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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호사설 (星湖私設) 3 >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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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族譜)란 가족의 계보, 즉 한 가문의 시조부터 현재 자손까지의 혈통과 계보를 기록한 책을 말한다. 오늘의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함은 수천, 수만 조상들의 삶과 인연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 인연의 기록이 족보라 할 수 있겠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로 시작하는 신약성경 마태복음 첫 장을 보면 예수의 존재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 신의 아들, 아니 신 그 자체로 십자가에 못박힌 사건은 그리스·로마 신화처럼 인간의 단순한 창작이 아닌 실재임을 마태는 밝히고 있다.

아득한 옛날, 원시시대. 돌도끼를 들고 날짐승을 사냥하던 어떤 총각과 먹을 만한 나무열매를 따던 어떤 처녀가 눈이 맞아 함께 살며 딸자식을 낳은 것이 내 존재의 시발점이었을 것이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를 거치면서 내 조상은 부지런히 후손들을 생산하였지만 문자가 없던 시대라서 그들의 삶은 기록되지 못하고 그냥 면면히 세월을 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1600년 경자년 퇴계 이황의 손자 이영도가 시조 이석(李碩)으로 부터 12대까지의 가계도를 작성하니 이름하여 세칭 ‘도산보陶山譜’로 알려진 ‘진성이씨 족보(眞城李氏族譜)’이다. 나는 그 족보에 21세손으로 이름이 올라가 있다.

‘진성’이란 본관(本貫)이다. 즉 시조가 살았던 곳이나 처음 성씨를 사용하기 시작한 곳이다. 나의 시조 어르신은 고려시대 ‘진보현’(현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5세손 이계양이 중종반정 공신으로 ‘진성군(眞城君)’에 봉해지면서 진보 이씨 대신 진성 이씨로 가문의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어릴 때 큰아버지 집 제사에 갈 때면 증조부 및 조부님의 제문내용을 통해 나는 진성 이씨 가문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제사가 당연시되던 우리 세대는 그랬다. 그러나 제사를 잘 지내지 않는 요즘 세대는 본관을 모르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한국은 좀 덜한데 타국에 살면 정도가 심하다. 가끔 만나는 청년들에게 본관을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이 열에 한 둘이다. 더구나 본관을 떠나 살면서 갈라진 계파의 이름을 아는 젊은이는 가뭄에 콩 나듯 하다. 

사돈 남 말 할 것 없다. 사실 나도 손자가 태어날 때까지 본관만 알았지 계파는 잘 몰랐다. 조선의 성리학자인 퇴계 이황이 자랑스러운 우리 조상이라고 떠들고 다녔으나, 따지고 보니 직계조상은 아니었다. 나의 직계 참의공파 계보는 시조 이석의 장손인 이운구 조상님으로로 부터, 상계종파인 퇴계 이황은 차손 이운후 조상님으로로 부터 분파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문에 이황 같은 대학자가 있다는 사실을 항상 자랑으로 여겼다. 손자의 이름을 족보에 올리기 위해 공부하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이다.

시조의 장손으로부터 계파가 시작되다 보니 참의공파-이운구가 공조참의를 지냄으로 비롯됨-가 다른 계파에 비해 항렬이 높다. 항렬은 같은 씨족 내에서 세대관계를 나타내는 서열이다. 이를 통해 누가 윗세대이고 아랫세대인지 알 수 있다. 예컨대 필자의 아버지세대는 ‘보(寶)’, 우리는 ‘원(源)’, 아들세대는 ‘동(東)’, 손자세대는 ‘환(煥)’자 항렬로써 이름의 중간, 또는 끝자리에 넣어 서열을 표시한다. 요즘은 영어나 한글 이름을 사용하는 젊은 부모들이 늘어나면서 조상으로부터 세세년년 내려오던 항렬 전통이 사라질 위기에 있다.

  내가 은행지점장을 하면서 가끔 외래교수로 대학 강의를 나간 적이 있었다. 당시 모 대학 학과장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본관이 같은 종씨였다. 그는 나이가 나보다 열살은 많으니 자기가 형뻘 인줄 알고 내게 말할 때 반말 비슷한 ‘~하게’를 했다. 당연히 나도 항렬이 그보다 낮을 것으로 생각했다. 문제는 여러 종파들이 모이는 대종회 야유회에서 벌어졌다. ‘환(煥)’자 항렬을 쓰는 그 교수는 알고 보니 내 손자 뻘이었다. 나와 같은 항렬을 가진 어르신 한 분이 그 교수를 뿌옇게 나무랐다. 할아버지에게 ‘~하게”를 쓰는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은 우리 가문이 아니라고. 얼굴이 벌게진 그는 이후 학교에서 나를 만나면 슬금슬금 피해 다녔다. 나도 어쩐지 불편해서 그 학교 강의를 그만 두었다.

밴쿠버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팔순을 훨씬 넘긴 분인데 부친이 ‘동(東)’자 항렬, 조부님이 ‘원(源)’자 항렬을 쓰신단다. 그 당시 스무 살가량 적은 내게 ‘할배님’하는 데, ‘한국도 아닌데 무슨 항렬 따지세요? 연세 많으신 분이 어르신이지요.”하고 극구 말렸지만, ‘양반 집안인데 그럴 수 없지요.’했다. 양반가문에 대한 자긍심과 뿌리의식은 면면히 내려온 역사와 전통에 기반한다. 아름다운 미풍양식이 아닌가.

아. 그러나, 머지않아 캐나다에 사는 한국인들은 항렬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2세, 3세, 4세 내려갈수록 아이들에게는 항렬자가 들어간 한국이름대신 영어이름만 남게 되고, 족보에 이름을 올리지 않는다면 장차 본관이 같더라도 그가 형인지, 동생인지, 삼촌인지, 할아버지인지 전혀 모르게 될 것이다. 설마 항렬로 따져 촌수가 조카나 이모, 누나나 오빠 뻘 되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는 일은 없겠지. 모르고 친족간 근친혼을 하게 된다면? 알게 되면 얼마나 황당할까. 

아예 항렬이 들어가는 한국이름은 만들지도 쓰지도 않는 차세대들을 보면 한심하다. 아니, 그들의 탓이 아니다. 태어날 때 작명해 준 부모들이 문제다. 꼭 영어이름만을 써야 캐나다 땅에서 출세하고 대접받는가? 인생의 승리자가 되어 자신을 빛낼 수 있는 것은 근면과 성실과 노력이지 이름자 때문은 아니다. 한류의 전파로 한국인의 위상이 높아지는 지금, 젊은이 들이여. 족보를 찾아보라. 그리고 내가 어디에서 왔으며, 현재 나의 위치, 우리의 자리가 어디쯤 인지 한 번 되짚어 보기를 바란다. 명망 있는 가문과 비천한 가문의 차이는 족보에 기록된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느냐, 아니면 무시 하느냐에 달려 있다.

글쓴이 | 이원배
늘푸른 장년회 회장,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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